후원과 광고 자세히보기

신학 자료/조직신학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셨을까? 산상설교 반제(Antitheses)의 진짜 의미

개혁신학어벤져스 2020. 7. 31. 10:54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이는 창세로부터 '예정'된 일이며, 현상학적으로 율법은 그리스도를 주시기로 작정하신 '언약의 갱신과정'에서 자연스럽고 필수불가결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fY1R0dNWMA&app=desktop

[한 줄 요약] 신약 시대에 구약의 율법과 희년법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의 부으심을 통해 외식적인 문자주의를 넘어 '사랑과 자비의 정신'으로 더욱 깊고 철저하게 완성되었습니다.

  • 천국의 크고 작은 자: 신약 시대(하나님 나라의 통치 시대)에 가장 작은 자는 지극히 작은 율법이라도 폐지하고 가르치는 자이며, 참된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원래 의도를 마음에 새기고 행하는 자입니다.
  • 은혜를 통한 의의 초월: 인간의 본성으로는 바리새인의 의를 뛰어넘을 수 없지만, 예수를 주로 고백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는 순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를 뛰어넘는 사랑의 실천이 가능해집니다.

 

타임라인별 상세 내용 (소제목 구조)

[00:00 ~ 01:55] 도입부: 희년법은 신약 시대에 폐기되었는가?

  • 율법 폐지론에 대한 반박: 사도 바울이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했다 하여 구약의 희년법이나 사회경제적 법들을 완전히 폐지된 것으로 보면, 구약의 풍성한 자산들은 오늘날 우리 삶(학교, 직장)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집니다.
  • 강의의 핵심 주제: 예수님과 바울의 신학을 오해하여 생긴 '율법 폐지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율법은 결코 폐지되지 않았다"는 성경적 진리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01:56 ~ 06:31] 산상설교 반제($\mathit{Antitheses}$)를 둘러싼 신학적 오해 교정

  • 대조와 충돌이라는 착각: 흔히 산상설교의 "옛 사람에게 말한 바 ~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는 문구를 보며 예수님이 구약의 율법을 반대하고 뒤엎으셨다고 피상적으로 오해합니다. 다수의 신학자나 주석가들도 이 구절을 '율법 폐지'의 근거로 삼곤 합니다.
  • E. P. 샌더스의 통찰과 연속성: 샌더스($\mathit{E. P. Sanders}$) 등의 학자가 올바르게 짚었듯,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구약 율법의 원래 정신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 완성($\mathit{Radicalization}$)하신 것입니다. (강사님의 석사 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합니다.)

[06:32 ~ 10:20] 마태복음 5:17-19, 하나님 나라(천국)의 평정 기준

  • 율법의 완전함: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완성하게 하려 함이라(5:17)"고 명확히 선언하셨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1점 1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집니다.
  • 신약 시대의 '큰 자'와 '작은 자': 마태복음의 '천국'은 죽어서 가는 나라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승천으로 시작된 '신약 시대(하나님의 통치 시대)'를 내포합니다. 이 시대에 율법을 자의적으로 폐지하고 가르치는 신학자나 목회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되며, 율법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큰 자'가 됩니다.

[10:21 ~ 19:30] 바리새인의 의($\mathit{Righteousness}$)를 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

  • 구원의 절대 기준: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고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서 부자 청년과의 대화처럼, '천국에 들어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 '구원을 얻음', '영생을 얻음'은 모두 같은 구속사적 동의어입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실체: * 서기관(율법학자)의 의: 율법의 깊은 정신을 왜곡하고 문자주의에 갇혀 율법을 우회하는 편법을 가르쳤습니다.
    • 바리새인의 의: 구제, 기도, 금식 등을 행할 때 오직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성에 갇혀 있었습니다.
  • 성령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법: 지식적으로만 예수를 아는 사탄의 믿음이나 구원파적 칭의론은 가짜입니다. 야고보서의 선언처럼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됩니다. 바울 서신과 연결하면, 예수를 믿어 성령을 선물로 받은 신자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법'을 마음에 새기게 되므로, 바리새인의 외식적 수준을 초월하여 율법을 온전히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19:31 ~ 24:42] 제1반제: 살인하지 말라 —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으리라"

  • 문자주의를 넘어선 내면의 통제: 구약 십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출 20:13)"고 명시합니다. 여기에 서기관들은 "살인하면 재판(심판)을 받는다"는 구전 전통을 덧붙여 행위만 안 걸리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 예수님의 철저화: 예수님은 문자적 살인을 넘어, 믿음의 형제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분노($\mathit{Anger}$)하고 바보($\mathit{Raca}$), 미련한 놈($\mathit{Moreh}$, 사탄의 자식이라는 정죄)이라고 욕하는 자마다 이미 심판과 지옥 불의 위험에 처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 과장법의 충격 격려: 물론 이 말씀에는 성도들이 평상시대로 방종하며 살지 않도록 심각성을 일깨우는 강력한 과장법($\mathit{Hyperbole}$)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내면의 분노와 독설을 차단하는 자는 결코 실제 살인 단계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24:43 ~ 31:27] 제2반제: 간음하지 말라 — "음욕을 품고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의도의 심판: 서기관들은 육체적인 간음 행위만 저지르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가르쳤습니다.
  • 마음의 정결 요구: 예수님은 여인을 취하려는 악한 목적과 흑심(의도)을 품고 바라보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울타리를 높이셨습니다.
  • 실족케 하는 신체 비유: 눈을 빼어버리거나 손을 잘라버리라는 파격적인 비유 역시, 구약의 신체 훼손 금지 명령(신 14:1)에 비추어 볼 때 문자 그대로 행하라는 뜻이 아니라, 죄의 기회와 유혹의 환경을 철저하게 차단하라는 강력한 결단을 촉구하는 과장법적 가르침입니다.

[31:28 ~ 37:38] 제3반제: 이혼 증서 —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지 말라"

  • 편법적 구약 해석 교정: 서기관들은 신명기 24:1의 구절을 악용하여, 아내가 밥을 태우거나($\mathit{Hillel}$ 학파) 더 예쁜 여자를 발견했다는 사소한 트집을 잡아 이혼 증서만 써주면 언제든 적법하게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혼 증서가 여성의 재혼 권리를 보호하는 자비로운 장치였음에도 이를 이혼의 방편으로 남용한 것입니다.
  • 가정의 순결 보호: 예수님은 음행($\mathit{Porneia}$)한 재판상 사유 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은 가정을 파괴하고 여인을 강제로 가늠하게 만드는 악행이라고 단호히 선언하셨습니다. 율법의 원래 취지인 가정을 보호하고 이혼을 억제하는 정신을 강력히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37:39 ~ 41:56] 제4반제: 맹세하지 말라 —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

  • 고르반($\mathit{Korban}$)과 맹세의 악용: 당시 유대인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율법적 의무를 피하기 위해 성전, 하늘, 땅을 걸고 "이 재산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거짓 맹세를 남용하는 꼼수(고르반 전통)를 부렸습니다. 율법을 어기기 위한 장치로 맹세를 사용한 것입니다.
  • 정직한 소통 지향: 예수님은 하늘이나 땅마저도 하나님의 보좌요 발등상이니 도무지 맹세의 수단으로 남용하지 말고, 오직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는 정직한 책임 신앙을 가질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거짓 맹세를 아예 안 하는 자가 율법을 파기할 위험도 없기 때문입니다.

[41:57 ~ 47:30] 제5반제: 동형보복법 —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 정의의 원리를 복수의 원리로 변질: 구약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동형보복법)"는 재판관들이 피해자가 당한 것 이상으로 과도하고 잔인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도록 한 '공평과 자비의 재판 원리'이자 약자 보호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이를 개인이 사적으로 원수를 갚아도 된다는 '복수의 면죄부'로 남용했습니다.
  • 오른뺨과 속옷의 역설: 예수님은 사적 복수를 종식시키며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법정의 정의 윤리를 뛰어넘어, 개인 윤리의 차원에서 이웃을 향해 무한한 자비와 은혜의 원리를 적용하라는 완전한 성화의 요청입니다.

[47:31 ~ 52:34] 제6반제: 원수 사랑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 민족주의적 편견 탈피: 레위기 19:18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고 가르치며 원수를 개인적으로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이웃'을 동족(유대인)으로만 제한하고, "이방인(원수)은 미워해도 된다"고 율법을 축소 왜곡했습니다.
  • 하나님의 온전하심($\mathit{Teleios}$):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공평하게 해를 비추시며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동일하게 비를 내리시는 '전체적인 사랑'을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비기독교인, 불신자, 심지어 우리를 박해하는 자까지 이웃의 범위에 포함시켜 사랑하고 기도할 때, 비로소 "하늘 아버지가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8)"는 최고 단계의 율법 완성이 이루어짐을 공포하셨습니다.

[52:35 ~ 1:04:35] 물질관의 완성: 부자 청년의 한계와 삭개오의 희년 성치

  • 마태복음 19장 부자 청년의 슬픔: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mathit{Teleios}$)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것은 산상설교 5:48의 온전한 이웃 사랑을 물질 영역에 대입하신 것입니다. 토지와 부를 독점(희년법 파괴)한 청년은 이 온전한 사랑의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구원의 길에서 멀어졌습니다.
  • 삭개오의 진짜 회개: 진짜 믿음이 들어가면 소유를 포기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부자는 천국 가기 힘들다는 영적 역설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세상을 바라보며 이웃에게 99.9%의 미분적 영광을 향해 나눔을 실천하는 자가 참된 구원의 백성입니다.
  • 바울 서신을 구원파적으로 왜곡하여 율법 폐지론에 빠진 20세기 영지주의적 한국 교회의 현실을 통렬히 개혁해야 합니다.

[1:04:36 ~ 2:10:17] 결론 및 질의응답: 오라 나는 죄인이로소다 (정직한 직면)

  • Q. 살면서 나도 모르게 서기관의 편법을 선택하여 깊은 죄책감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A. 거울 앞에 서는 정직함: 산상설교의 높은 기준을 마주할 때 죄책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며, 오히려 복된 일입니다. 바리새인처럼 기준을 낮추어 편법으로 안심하려 하지 말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고백했던 바울처럼 정직하게 나의 죄인 됨을 대면해야 합니다.
  • 그 죄책감과 한계를 안고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며 주님께 나아갈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시고 날마다 주님의 온전한 형상을 닮아가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lguJP19RnE

[한 줄 요약]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안식일 법과 정결 규례를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바리새인들의 '장로들의 전통(유전)'을 책망하시며 **'자비와 생명 구원'**이라는 율법의 원형을 성취하셨습니다.

  • 안식일과 사람의 우선순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구하고 자비를 베푸는 행위는 안식일의 참된 유효성을 증명합니다.
  • 마음의 정결이 본질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탐욕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외식적인 손 씻기 전통보다 내면의 거룩함(성화)이 구원받은 백성의 증거입니다.

 

 타임라인별 상세 내용

[00:00 ~ 05:45] 도입부: 신약 시대의 율법 폐지론이라는 거대한 편견

  • 구약 법의 현대적 오용 지적: 오늘날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신약 시대에는 구약의 율법과 희년법이 다 폐지되었다"고 성도들에게 잘못 가르칩니다. 구약을 지키자고 하면 '신율주의'라고 공격하며 율법 폐지론(도덕폐하기각론)에 안주하려 합니다.
  • 잘못된 프레임의 문제: 이는 성경 전체를 왜곡하는 심각한 지적 오해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나 안식일 사건은 구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행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시키는 가짜 복음파적 구원론을 극복해야 합니다.

[05:46 ~ 12:41] 사건의 발단: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제자들

  • 바리새인들의 정죄: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며 직각(즉각)적으로 비판했습니다.
  • 장로들의 전통(한라카)의 모순: 구약 성경(출애굽기, 신명기)의 안식일 법은 종과 가축, 약자들에게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쉼(쉼을 줌)'을 주기 위한 자비의 법이었습니다.
  •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39가지 안식일 금지 조항' 같은 인위적인 울타리(전통)를 촘촘하게 쳐서, 배고픈 제자들의 생계적 행위를 '추수와 타작'이라는 노동으로 정죄하여 율법의 원래 정신인 자비를 무너뜨렸습니다.

[12:42 ~ 17:22] 다윗의 진설병 사건과 안식일의 참된 제정 목적

  • 다윗의 역사적 전례 인용: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권위에 의존하여 반박하셨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치다 굶주렸을 때,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오직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인 '진설병($\mathit{Showbread}$)'을 얻어 자신과 추종자들에게 먹였던 사건(삼상 21장)을 상기시키셨습니다.
  • 제사법을 뛰어넘는 긍휼: 율법의 제사 규례상 다윗의 행위는 불법에 가깝지만, 성경은 다윗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의식법(제사법)의 엄격함보다 주려 굶어 죽어가는 '인간의 생명 구원'과 자비가 하나님의 율법관에서 훨씬 더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17:23 ~ 22:01]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 메시아 주권 선포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 예수님은 안식일 논쟁의 핵심을 관통하는 위대한 원리를 선언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제정된 본질적인 목적은 인간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평안을 위함입니다.
  • 성전보다 더 큰 이: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제사 의무를 행해도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성전보다 더 큰 이'이자 율법의 입법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인자, $\mathit{Son\ of\ Man}$)가 지금 제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인자는 안식일을 제정하신 주권자이므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규정할 완전한 권한을 가지십니다.

[22:02 ~ 26:52]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호세아 6:6의 성취)

  • 하나님의 진정한 요구: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며 호세아 6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 문자주의적 정죄의 비판: 문자적 조문에만 매달려 정작 율법의 핵심인 '의와 인과 신(정의, 자비, 신실함)'을 버린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는 가짜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 이벤트를 통해,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예수님을 고발하려는 바리새인들의 악한 마음)보다 당연히 옳음을 행동으로 증명하셨습니다.

[26:53 ~ 35:03] 고르반($\mathit{Korban}$) 전통 비판: 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자들

  • 부모 공경 계명의 우회: 마태복음 15장과 마가복음 7장에서 서기관들은 또 하나의 악질적인 편법을 가르쳤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공양해야 할 물질과 토지를 두고 "이것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르반, $\mathit{Korban}$)"고 선언하기만 하면, 부모에게 아무것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했습니다.
  • 종교적 위선을 통한 착취: 이들은 겉으로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척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부모 공양의 의무를 회피하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율법의 울타리를 남용했습니다. 인간의 유전(전통)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절대 계명(십계명의 부모 공경)을 정면으로 파기하는 무서운 죄를 범한 것입니다.

[35:04 ~ 46:08] 내면의 정결론: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 외식적인 손 씻기 논쟁: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부정하다'고 정죄했습니다.
  • 본질적인 정결의 기준: 예수님은 무지한 이들을 향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버려지거니와,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힌다"고 선언하셨습니다.
  • 마음의 부패 직면: 사람을 진짜 부패하게 만드는 것은 손에 묻은 흙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갈라디아서의 육체의 소욕)입니다. 예수님은 의식적인 정결례를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 내면의 철저한 성화와 도덕적 청결을 요구하셨습니다.

[46:09 ~ 59:55] 결론: 20세기 영지주의적 한국교회 구원론의 개혁

  • 한국교회 윤리적 위기의 원인: 사도 바울의 칭의론을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믿기만 하면 율법은 안 지켜도 구원받는다"고 안심시키는 한국교회의 지배적인 정서는 초대교회 이단인 '영지주의($\mathit{Gnosticism}$)' 및 구원파적 이원론의 부활입니다.
  • 행함이 있는 믿음: 야고보서의 강조처럼 진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마음의 법이 완전히 갱신되어 삶의 현장에서 사기 치지 않고, 이웃을 착취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희년법의 자비)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냅니다. 삶의 열매가 없는 확신은 착각이자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4. 질의응답 및 토론 (정직한 회개와 성령의 도우심)

  • Q. 목사님, 저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니 예수님의 높은 윤리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 늘 넘어지고 서기관처럼 편법으로 타협하려는 제 모습 때문에 깊은 죄책감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A. 거울을 깨뜨리지 마십시오: 죄책감이 들고 상처를 받는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신자라는 정직한 증거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 율법을 왜곡(편법)하여 스스로 안심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우리는 기준을 낮추는 위선을 부리지 말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고백하며 겸손히 성령의 내적 조명과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99%에서 출발하여 무한히 100%를 향해 달려가는 미분적 영화의 과정 속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행실을 다스려 주실 것입니다. 기도로 성령을 의지합시다.

2020.07.28 - [신학 자료/조직신학] - 말뿐인 신앙은 가짜다? 산상설교와 갈라디아서로 보는 '이웃 사랑'의 실천(신현우 교수)

 

말뿐인 신앙은 가짜다? 산상설교와 갈라디아서로 보는 '이웃 사랑'의 실천(신현우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AUHGHz22e30 [한 줄 요약] 기독교의 참된 구원은 머리로만 믿는 지식이나 외식적인 종교 행위에 머물지 않고, 성령의 조명 아래 자신을 낮추며 구체적인 '이웃 사랑'과 '물질

cr-ministry-institute.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