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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2:1-6, 10-12
Additional Psalm: Psalm 83
Old Testament Reading: Job 36:1-21
New Testament Reading: John 11:38-57
오늘의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어 영광스러운 부활을 잠시나마 엿보게 하셨으며, 거룩한 세례의 물을 통해 우리가 언젠가 될 모습과 이미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주님의 영광의 빛으로 주님의 부활의 빛을 비춰주소서. 주님께서는 성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나님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1153)
묵상
예수님은 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그의 이름을 불러 “나사로야, 나오라” (요한복음 11:43) 하고 말씀하셨을까요? 어떤 재치 있는 사람이 암브로시우스의 뒤를 이어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더라면 모든 묘지를 비우셨을 것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실로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 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믿음을 일으키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읽는 것을 믿는다면, 죽었던 당신의 영혼도 나사로와 함께 되살아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덤에 가셔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요한복음 11:43) 하고 외치신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가시적인 증거를 주시고 미래의 부활에 대한 본보기를 제시하시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왜 그분께서는 마치 영 안에서 일하고 조용히 명령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까? 그분은 오직 기록된 바와 같이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2)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신 것은 나팔 소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외치셨습니다. 이름이 왜 추가되었을까요? 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난 것처럼 보이거나, 부활이 명령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죽은 자가 듣고 수의로 손과 발이 묶인 채 얼굴은 수건에 싸인 채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다면, 눈이 가려진 채 어떻게 길을 찾아갔고, 묶인 발로 어떻게 걸음을 옮겼으며, 묶인 사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유로운 것처럼 움직였는지 상상해보십시오. 결박은 그에게 그대로 있었지만 그를 억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눈은 가려졌지만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9:39). 그리하여 살아나고, 걷고, 무덤을 떠난 그 사람은 보았습니다. 신성한 명령의 능력이 역사할 때, 자연은 그 고유한 기능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극한 상황에 처한 것처럼, 자연은 더 이상 자신의 길을 따르지 않고 신성한 뜻에 순종했습니다. 죽음의 결박은 무덤의 결박보다 먼저 풀렸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아직 공급되기도 전에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되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것에 놀란다면, 누가 그 명령을 내렸는지 생각하고 놀라기를 멈추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 생명, 빛, 죽은 자의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능력 그분께서 엎드려 있는 자를 일으키셨고, 생명 그분께서 그의 발걸음을 만들어내셨으며, 빛 그분께서 어둠을 몰아내시고 그의 시력을 회복시키셨고, 부활 그분께서 생명의 선물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암브로시우스, 사티루스의 죽음에 관하여, 2.7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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