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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경건회(기도회) & 기도문

[경건회B] MONDAY—EASTER 3

개혁신학어벤져스 2025. 10. 30. 16:16

 다음의 책을 사용합니다.

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80:1-7

Additional Psalm: Psalm 27

Old Testament Reading: Exodus 33:1-23

New Testament Reading: Luke 7:1-17


 오늘의 기도: 오 하나님, 당신의 전능하신 말씀으로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하셨나이다. 우리에게 해로운 모든 것을 멀리하시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들을 주시옵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으로서 이제와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나이다. (C62)


 묵상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을 숨기십니다. 그분의 자기 계시는 결코 먼저 드러내심이 아니라 감추심이며, 그런 뒤에야 비로소 자기를 드러내심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위해(요한복음 6:46), 마리아에게서 나신 인간의 육신이라는 외투 안에 자신을 감추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대와 얼마나 정반대입니까. 우리는 신적인 불꽃놀이로 완성되는 화려한 쇼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단호히 거부하신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증명하시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증명하셨지만, 오직 우리가 멸시하는 약함의 징표들 안에서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십자가에 달린 그분의 등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갈보리의 바위 틈에 숨기십니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마태복음 20:28) 오신 하나님으로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도록 고난받는 종으로 지나가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분은 우리의 최악의 원수, 즉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뵙고 싶은 우리의 열망은 고귀한 열망이지만, 그분의 얼굴과 그 충만한 영광을 뵙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구원만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때 그분은 우리를 눈멀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대신,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죄로 찢기신 그분의 등과, 사람의 형상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상하신 그분의 용모를 보여주시며, 우리가 오직 그분의 죽음 안에서만 지나가시는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못 자국 난 손을 보여주십니다. 갈보리의 바위 틈에서 우리는 오직 십자가만을 봅니다. 나중에야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볼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숨기심이며, 그 숨기심 안에서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등(출애굽기 33:17-23)을 본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분의 '뒷모습'(back parts)은 그분이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의 육신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것들이 '뒷모습'이라 불리는 것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끝 때문이든, 혹은 그분이 그것을 취하시기로 하신 때가 거의 세상 끝, 즉 늦은 시기였기 때문이든 간에 말입니다. 그분의 '얼굴'은 그분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던(빌립보서 2:6 참조) 바로 그 하나님의 본체(form)였으며, 그것은 아무도 확실히 보고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을 떠나 있고 썩어질 몸이 영혼을 짓누르는 이생이 끝난 후에,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고린도전서 13:12) 볼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거스틴, 삼위일체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