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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경건회(기도회) & 기도문

[경건회B] 5월 31일

개혁신학어벤져스 2025. 11. 25. 12:05

 다음의 책을 사용합니다.

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The Visitation (Three-Year Lectionary)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146:5-10

Additional Psalm: Psalm 146

Old Testament Reading: Ecclesiates 8:1-17

New Testament Reading: John 9:1-23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택하여 주님 아드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고, 그녀를 통하여 가난하고 비천하며 멸시받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은혜로운 돌보심을 알리셨나이다. 간구하옵나니, 우리가 겸손과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주님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그리고 영원토록 살아 계시고 다스리시나이다. (F18)


 The Visitation

 구원 역사의 두 위대한 인물인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기적적인 상황에서 아이를 잉태한 두 여인, 곧 동정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함으로 이제 함께하게 됩니다(누가복음 1:39–45). 그리하여 요한은 그들이 아직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예수님의 임재 앞에 놓이게 됩니다. 주님의 이러한 임재는 아이 요한이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뛰놀게 함으로써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임재에 대한 요한의 반응은 선구자로서의 요한 자신의 역할을 미리 보여줍니다.

 바로 지금 이미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고 있으며, 아직 태중에 있는 아기가 새 창조의 시작을 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의 뛰놂 속에는 자신의 임재로 모든 피조물을 뛰놀게 하실 예수님의 기적들이 예표되어 있습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누가복음 7:22).

 메시아의 성육신하신 임재는 또한 마리아의 복됨을 선포하는 엘리사벳의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마리아의 찬가(누가복음 1:46–55)는 마리아가 구원 역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요약함에 따라 이 만남의 신학적 의미를 제공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비천한 자들을 들어 올리시고 그들에게 은혜로운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입니다.


 묵상

 몇 해 전, 침례교 신학자인 한 친구가 말하기를, 자신의 교회가 세례를 높이 평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루터교의 세례 신학이 훨씬 더 풍성하다고 했습니다. 이 칭찬은 우리에게 성경 자체의 세례 신학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성경이 세례에 돌리는 위대한 역사들, 예를 들어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는 것을 포함한 역사들에서 이것을 봅니다(요한복음 9: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물은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그들은 그 맹인에 대해 물을 때 자신들의 맹목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보지 못하면서도, 볼 수 있었던 제자들보다 훨씬 더 잘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를 지었으며 내면의 마음이 눈멀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의 실로암 못으로 보내신 그 맹인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에 의해 세례의 못으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씻음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사도행전 9:18).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깨달음을 위해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본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불신앙이 맹목이고 믿음이 깨달음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누구를 신자로 발견하셨겠습니까? 우리는 선지자 가문에 속한 사도가 ‘우리는 본질상 다른 이들과 같이 진노의 자녀였더니’(에베소서 2:3)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진노의 자녀’라면, 곧 복수의 자녀요, 형벌의 자녀요, 지옥의 자녀입니다. 어찌하여 ‘본질상’이겠습니까? 첫 사람의 죄를 통해 도덕적 악이 우리 안에 본성으로 뿌리내린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악이 우리 안에 그토록 깊이 뿌리내렸다면, 모든 사람은 정신적으로 눈먼 채 태어나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본다면, 인도자가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를 인도하고 비추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그는 날 때부터 맹인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맹인은] ‘보냄을 받았다’라고 번역되는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어떤 의미에서 그를 자신 안에서 세례 주셨을 때, 주님은 그를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진흙을 바르셨을 때, 아마도 그를 예비 신자(catechumen)로 만드셨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성례전적 행위의 심오한 의미는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되고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나는 지금 신자들과 예비 신자들 모두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침과 진흙에 대해 내가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비 신자들도 듣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름을 받은 것만으로는 그들에게 필요한 전부가 아닙니다. 그들이 깨달음을 구한다면 세례반으로 서둘러 가게 하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 요한복음 설교, 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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