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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경건회(기도회) & 기도문

[경건회B] 7월 16일

개혁신학어벤져스 2025. 12. 14. 12:23

 다음의 책을 사용합니다.

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Ruth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21:1-7

Additional Psalm: Psalm 21

Old Testament Reading: Judges 16:4-30

Additional Reading: Judges 17:1-21:25

New Testament Reading: Galatians 4:12-31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보전하시고 주님의 기업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주님의 복되신 아들의 탄생을 이루어 낼 계보를 잇는 일에 가망 없어 보이고 뜻밖의 그릇들을 사용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룻의 충성심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주시어, 우리도 순종과 공경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의 택하신 백성 가운데 계수되게 하옵소서. 지금도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다스리시는 성령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1058)


 Ruth

 모압 여인 룻은 자기 이름이 붙은 성경의 주인공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본보기입니다.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다윗 왕의 증조모(룻기 4:17)이자 예수님 자신의 조상(마태복음 1:5)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자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두 아들을 데리고 이웃 나라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두 아들은 모압 여인 오르바와 룻과 결혼했으나, 십 년쯤 후에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룻기 1:1-5). 그러자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며느리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 오르바는 나오미의 조언을 따랐으나, 룻은 거절하며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말로 대답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기 1:16). 룻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후, 엘리멜렉의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가 룻의 ‘기업 무를 자(redeemer)’가 되기로 동의했습니다(룻기 3:7-13; 4:9-12). 그는 룻을 아내로 맞이했고, 룻은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아(룻기 4:13-17) 메시아의 계보를 잇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를 향한 룻의 인애(仁愛)와 헌신적인 충성, 그리고 나오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오랫동안 성도들에게 사랑받아 왔으며,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택하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선택에 대한 찬송이 되었습니다.


 묵상

 구약 성경은 하갈과 사라의 비유를 통해 사람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 사이의 차이를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아이를 낳을 시기가 지나 늙어버린 자신의 아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이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을지 의심했습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힘은 이미 오래전 메마른 세월 속에 고갈되어 그녀에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그녀에게 공허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그녀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행하실 수 있을지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이집트인 여종을 아브라함에게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여전히 사라를 사용하셨습니다. 사라는 자신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위대한 어떤 것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사라는 약속의 자녀를 낳았기에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약속으로 살아갑니다.

 “지상 도성의 한 부분은 천상 도성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도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섬기는 자, 곧 ‘종노릇하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4:25). 그것은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도성을 예표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도성의 그림자인 이것 또한 그에 앞선 다른 인물에 의해 예표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라의 여종 하갈과 그녀의 아들은 이 모형의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빛이 오면 그림자는 사라져야 하기에, 자유 있는 도성을 예표했던 자유 있는 여자 사라는(이 자유 있는 도성은 지상의 예루살렘이라는 도성의 그림자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예표되기도 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세기 21:10). 혹은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갈라디아서 4:30)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상 도성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그 자체의 분명한 현존이고, 다른 하나는 천상 도성에 대한 상징적 제시입니다. 시민들은 죄로 인해 약해진 본성에 따라 지상 도성에 태어나지만, 본성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은혜에 따라 천상 도성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전자는 ‘진노의 그릇’이라 불리고, 후자는 ‘긍휼의 그릇’이라 불립니다(로마서 9:22-23). 그리고 이것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게서 표상되었습니다.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태어났지만, 자유 있는 여자 사라의 아들 이삭은 약속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참으로 둘 다 아브라함의 씨였으나, 하나는 자연법칙에 의해 태어났고 다른 하나는 은혜로운 약속으로 주어졌습니다. 한쪽의 출생에서는 인간의 행위가 드러나고,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밝히 드러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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