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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139:13-16, 23-24
Additional Psalm: Psalm 139
Old Testament Reading: 1 Kings 1:1-4, 15-35
New Testament Reading: 1 Corinthians 12:14-31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주 하나님, 주께서 주의 종들에게 성령의 다양하고 독특한 은사들을 복으로 주신 것과 같이, 저희가 그 은사들을 언제나 주의 존귀와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나이다. (192)
묵상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의 신비로운 교제 속에서, 교회는 그분의 고난에 참여합니다 (고린도전서 12:25–26). 우리는 머리가 고통을 겪으면 몸도 함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경 질환을 앓고 있는 이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고난은 십자가 위에서 드려진 단번의 제사를 통해 성도들의 고난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 제사는 제사장과 제물, 그리고 피가 있는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를 통해 예표되었습니다. 메시아적 제물에 대한 그림자 같은 약속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성취되었기에, 그 모든 제사는 오직 그분의 제사 안에서만 의미를 가집니다. 그분의 제사가 그 옛날의 제사들을 돌아본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제사들이 앞으로 다가올 십자가의 제사를 내다보고 고대했던 것입니다.
이제 교회의 산 제사들은 십자가를 되돌아봅니다. 머리를 위한 몸의 고난은 언제나 십자가의 그늘 아래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루터는 우리의 삶이 언제나 “십자가 아래 보호받으며 숨겨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은닉성에 참여하며, 제사와 죽음, 피, 그리고 장례가 필요한 몸이라는 형상 아래 감추어진 하나님의 참된 의도를 비춥니다. 세상은 우리의 희생이 진정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희생만큼이나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직 믿음으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 또한 그분의 제사를 떠나서는 우리의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이신 그분 안에서 교회의 희생적인 삶은 충만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도성』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참된 중보자께서는 종의 형체를 취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형체이시나,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이신 성부와 함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종의 형체로서는 제사를 받기보다는 스스로 제물이 되기를 택하셨는데, 이는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제사가 드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분은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자 드려지는 제물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인 교회가 그분을 통해 자신을 드리는 법을 배우게 하심으로써, 교회의 제사 속에 이 일에 대한 매일의 표징이 있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드렸던 옛 제사들은 이 참된 제사에 대한 다양하고 수많은 표징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사물이 다양한 단어로 표현되듯이, 이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자주 말할 때 지루함이 덜하도록 하기 위해 다양하게 상징화된 것입니다. 이 지고하고 참된 제사 앞에 모든 거짓 제사들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Augustine, City of God,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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