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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경건회(기도회) & 기도문

[경건회B] 10월 18일

개혁신학어벤져스 2026. 1. 13. 15:39

 다음의 책을 사용합니다.

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St. Luke, Evangelist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75

Additional Psalm: Psalm 77

Old Testament Reading: Deuteronomy 17:1-20

New Testament Reading: Matthew 14:1-21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주님의 복된 아들께서는 의사 누가를 불러 복음 전도자이자 영혼의 의사가 되게 하셨나이다. 복음과 성례라는 치유의 약이 우리 영혼의 질병을 물리치게 하셔서,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영원히 사랑하며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나님으로서 이제와 영원히 살며 다스리시는 주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나이다. (F30)


 St. Luke, Evangelist

 성 바오로가 언급한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골로새서 4:14)는 우리에게 그 보혈로 불멸의 약을 선사하시는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누가의 여행 동반자였던 바오로는 누가의 복음서가 영혼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그 복음서를 자신의 것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유세비우스).

 누가는 바오로의 2차 전도 여행 중에 그와 동행하기 시작했는데, 바오로가 복음을 유럽으로 전하라는 마케도니아의 부름을 받은 직후 합류했습니다(사도행전 16:10–17). 누가는 빌립보에 약 7년 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보이며, 3차 전도 여행 끝무렵 마케도니아에서 다시 바오로와 합류했습니다. 그는 바오로와 함께 드로아, 예루살렘, 그리고 바오로가 2년 동안 투옥되었던 가이사랴까지 동행했습니다(사도행전 20:5–21:18). 누가는 가이사랴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복음서에 사용할 자료들을 조사했을 것입니다. 그 후 누가는 바오로의 로마 압송 여정에도 함께했습니다(사도행전 27:1–28:16).

 누가복음에서 특별히 사랑받는 이야기로는 선한 사마리아인(누가복음 10:29–37), 탕자(누가복음 15:11–32), 부자와 나사로(누가복음 16:19–31), 그리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누가복음 18:9–14) 등이 있습니다. 오직 누가만이 그리스도의 탄생(누가복음 2:1–20)과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누가복음 1:46–55), 사가랴의 노래(Benedictus, 누가복음 1:68–79), 시므온의 노래(Nunc Dimittis, 누가복음 2:29–32)를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또한 누가는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해 초대 교회에서 어떻게 그 사역을 이어가셨는지 보여주기 위해 사도행전을 집필했습니다. 신약성경의 3분의 1 이상이 전도자 누가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묵상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살해당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박해로 인한 깊은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길이 반드시 십자가로 이어져야 함을, 그리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야 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여러 가지 이유로 헤롯의 피 묻은 손에 붙잡히지 않도록 잠시 몸을 피하셨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살해함으로써 살기에 불이 붙은 상태였습니다. 요한이 그 길을 예비했던 저 번거로운 갈릴리의 설교자 또한 죽이려 들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들림을 받음으로써'(요한복음 12:32-33)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신성한 계획 안에 머물기 위해 물러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순교가 우리에게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고난을 스스로 찾아 나서지 않으며, 때로는 적절한 때가 올 때까지 고난으로부터 물러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요한의 순교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임을 아셨습니다. 사촌 형제의 끔찍한 상실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기에 주님의 슬픔은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모든 장례식은 죽음이 우리의 원수임을 일깨워줍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슬퍼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곧 모든 이의 죽음입니다. 구주께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분의 죽음이 영생을 향한 모든 이의 죽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이십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편 116:15). 우리의 죽음이 곧 그분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죽음을 구주께 알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소식을 들으시고 따로 빈들로 물러가셨으나(마태복음 14:13), 어떤 이들의 생각처럼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원수들이 살인에 살인을 더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배려하셨거나, 제물인 어린양을 바치고 믿는 자의 문설주에 피를 뿌리는 날인 유월절까지 자신의 죽음을 미루기 위해 물러나신 것입니다.

 또는 자신을 내어준 이들의 무모함을 피하는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물러나셨습니다. 왜냐하면 고문 앞에 스스로 몸을 내던질 때의 확신만큼 모든 사람이 고통 속에서 그 항심(恒心)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다른 곳에서 주님은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태복음 10:23)고 권고하셨습니다. 또한 복음서 기자가 '도망하셨다'고 하지 않고 '물러가셨다'고 기록한 것은 합당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피하신 것임을 나타냅니다" (제롬, 마태복음 주해, 2.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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