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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경건회(기도회) & 기도문

[경건회B] THE DAY OF PENTECOST

개혁신학어벤져스 2025. 11. 16. 11:09

 다음의 책을 사용합니다.

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135:8-14

Additional Psalm: Psalm 58

Old Testament Reading: Numbers 21:10-35

New Testament Reading: Luke 21:20-21:38


 오늘의 기도: 오 하나님, 주님께서는 일찍이 이 날에 성령의 빛을 보내시어 주님의 신실한 백성들의 마음을 가르치셨나이다. 간구하오니,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성령을 통하여 모든 것을 올바로 깨닫게 하시고, 그분의 거룩한 위로 안에서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나님으로서 이제와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주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나이다. 아멘. (L50)


 The day of Pentecost(성령강림절)

교회는 성령의 은혜로운 영감을 통하여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께 나아오거나 그분을 믿을 수 없습니다. 50일간의 부활절 축하는 이 기쁨의 축제(성령강림절)로 끝이 납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구주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거룩한 세례 시에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며, 말씀을 통해 우리를 양육하시고, 우리가 복음을 깨달아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십니다.


 묵상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날에 누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실지 알며, 이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우리의 의(義)가 되시는 분께서 궁극적인 정의를 행하십니다. 그러나 최종 심판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는 날카로운 날이 서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라는 저울에 달릴 우리 행위의 무서운 폭로를 암시합니다. 오시는 그분이 어떻게 위협과 기쁨, 정죄와 구원을 동시에 가져오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상황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심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지금 은혜로우신 주 그리스도를 뵙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은 십자가의 연약함 아래 감추어져 계십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고난받는 그리스도의 얼굴에서만 하나님을 봅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가 믿음으로 보던 것이 우리에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감추어지심을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은 마지막 날에 그들에게서 숨으시는 하나님만을 보게 될 것이며, 그때 그들이 알게 될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진노뿐일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알아왔던 것은 진노 가운데 오시는 감추어진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은 모든 것을 다시 드러내고 또 감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의 때가 성경에 정해져 있고, 내가 이해하기로 우리가 그것의 성취를 그리스도의 오심보다 앞서 둘 수 없기에, 우리의 기도는 이 세상의 종말, 곧 주님의 위대한 날—그분의 진노와 복수의 날—에 세상이 사라지는 것을 향합니다. 그 마지막 날은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고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징조와 기사, 원소들의 해체, 그리고 민족들의 갈등을 통해 미리 알려졌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임이라.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누가복음 21:26-28)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셨지, 이미 와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이라고 하셨지, 이미 일어났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속량이 가까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는 그 속량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지며, 이는 우리의 소망의 다가오는 추수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분발시킵니다." (터툴리우스, 부활론, 2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