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책을 사용합니다.
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The Nativity of St. John the Baptist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85:7-13
Additional Psalm: Psalm 85
Old Testament Reading: Proverbs 30:1-9, 18-33
New Testament Reading: John 20:19-31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주께서는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을 통하여 일찍이 구원을 선포하셨나이다. 이제 비오니, 우리가 이 구원을 알게 하시고, 평생토록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살아 계시고 다스리시는 주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나이다. 아멘. (F20)
The Nativity of St. John the Baptist
스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인 세례 요한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출생은 주님의 천사를 통해 그의 아버지에게 기적적으로 예고되었으며(누가복음 1:5–23),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연로한 아버지는 찬송시를 선포했습니다(누가복음 1:67–79). 이 찬송시는 ‘베네딕투스’라고 불리며, 교회의 아침 기도회(조도)에서 전통적인 복음 송가로 사용됩니다.
요한의 생애와 가르침에 관한 사건들은 4복음서 모두의 기록을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은 요단강 근처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촉구하고 죄 씻음의 세례를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무리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헤롯 통치 가문의 부도덕한 삶을 책망하였고, 그 결과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는 그를 체포하여 사해 근처의 거대한 마케루스 요새에 투옥했습니다. 그곳에서 헤롯은 요한을 참수했습니다(마가복음 6:17–29). 요한은 자신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어린 양”을 가리키고 메시아의 오심을 위해 “길을 예비한” 인물로 기억되며 존경받고 있습니다.
묵상
그리스도의 부활 후 나타나심은 그분의 사명과 본질에 대한 특히 명확한 선언입니다. 그분은 문이나 벽에 구애받지 않고 다락방에 있는 제자들 가운데로 들어오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얽매는 것들에 얽매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몸의 상처를 보여주시며 도마에게 만져보라고 권하십니다. 못은 우리에게 그랬듯이 그분을 얽매었고, 창은 우리를 찌르듯이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나를 만져 보라, 바로 나다!” 그분은 온전히 인간이셨고 여전히 그러하십니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이 아이는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기껏해야 어리석은 소리요, 최악의 경우 불신앙의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분은 자신의 존재 그대로를 행하십니다.
“도마는 그분의 상처를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항변했습니다(요한복음 20:25).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이해력 수준에까지 몸을 낮추십니다. 믿지 못하는 마음들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그분은 자신의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늘의 방식을 비판하는 그대여, 그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제자들은 닫힌 방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수난 이후 비밀리에 모여 집회를 가졌습니다. 주님은 도마의 도전에 응하심으로써 그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분은 그에게 만져볼 몸을 내어주시고, 확인해 볼 상처를 내어주십니다. 참으로 상처를 입으셨던 분으로 인식되려면, 그 상처를 입었던 바로 그 몸을 제시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묻습니다. 닫힌 집의 벽 어느 지점으로 주님이 육체를 입고 들어오셨습니까? 사도는 그 상황을 아주 정밀하게 기록했습니다.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너희 중에 서서’(요한복음 20:26)… 그곳에 그분은 육체로 서 계셨습니다. 속임수라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감각과 말로는 그것을 설명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 사실은 확실하지만, 인간의 설명 영역 너머에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낼 수 없다는 이유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우리 이해의 한계를 실재의 한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거의 확실성이 우리 반박의 허구성을 증명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닫힌 집 안, 제자들 한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당신의 보잘것없는 지혜로 그분이 어떻게 거기에 오셨는지 알아낼 수 없다고 해서, 그분이 서 계셨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감각과 언어의 무능력에만 기초한 불신앙, 곧 나지 않으시고 완전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하시고 완전하신 아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버리십시오”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삼위일체론』, 3.19–20).
'연구소 > 경건회(기도회) & 기도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건회B] 6월 25일 (0) | 2025.12.07 |
|---|---|
| [경건회B] 6월 23일 (0) | 2025.12.07 |
| [경건회B] 6월 22일 (0) | 2025.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