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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46
Additional Psalm: Psalm 54
Old Testament Reading: Nehemiah 4:7-23
New Testament Reading: 1 Timothy 3:1-16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주님께서는 거룩한 사도들을 인도하시어 곳곳에 목회자들을 세우게 하셨나이다. 간절히 구하오니, 주님의 양 떼가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 말씀과 성례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합당한 이들을 택하게 하시고,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그들의 사역을 잘 받들어 돕게 하소서. 우리 영혼의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립니다. (121)
묵상
고대 교회의 많은 감독은 공동체의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도록 강권 받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실제로 강제로 끌려가 교회를 다스리는 수고로운 직무에 임직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 연구라는 조용한 삶을 선호했는데, 바로 그러한 태도가 그들을 감독의 직분에 적합한 인물로 추천받게 만든 요인이었습니다. 즉, 직분을 탐내는 사람이야말로 그 직분을 맡겨서는 안 될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감독이 된다는 것은 명예를 얻거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봉사이자 짐스러운 수고입니다. 모든 영혼의 위대한 감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그 아래의 목자들도 주님이 맡기신 양 떼의 필요를 위해 희생적으로 봉사하며 자신의 삶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그분의 인격에서 흘러나왔듯이, 수고는 직분 뒤에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활동적인 삶에 있어서 우리가 탐내야 할 것은 이 세상의 명예나 권력이 아닙니다.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명예롭게 얻은 지위와 영향력을 우리 아래 있는 이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사도가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디모데전서 3:1)고 말했을 때 의도한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감독(overseer)’이라는 명칭이 명예가 아닌 사역의 이름임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는 헬라어인데, 다스리는 자가 자신이 다스리는 이들을 살피고 돌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위에서 살펴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기보다 다스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감독이 아닙니다.
따라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금지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러한 탐구에 여가(leisure)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비록 합당하게 직무를 수행한다 할지라도, 백성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높은 지위를 탐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여가는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만, 필요한 직무를 맡는 것은 사랑의 의무(necessity of love)입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이 짐을 지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롭게 진리를 가려내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짐이 우리에게 지워진다면, 우리는 사랑을 위해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묵상이 주는 달콤함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것마저 거두어진다면, 우리가 져야 할 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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