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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20
Additional Psalm: Psalm 25
Old Testament Reading: Deuteronomy 29:1-29
New Testament Reading: Matthew 18:21-35
오늘의 기도: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며 모든 경건의 근원이신 하나님, 특히 박해의 시기에 드리는 주님 교회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나님으로서 이제와 영원히 살아계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나이다. (A77)
묵상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자비는 얼마나 한없이 너그러운지요. 그분은 끊임없이 용서를 베푸십니다. 율법의 형벌이 일곱 배라는 완전한 숫자로 정해져 있었던 반면(창세기 4:15, 24), 주님의 자비는 죄악의 무게보다 훨씬 더 풍성했습니다. 그분의 용서는 죄악을 이기고, 넘쳐흐르는 풍요로움으로 수많은 형벌로부터 우리를 구출합니다. 이러한 관대함은 복음 선포 속에서, 그리고 복음의 정수인 '거룩한 사죄(Absolution)'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세례의 정결한 씻김으로 거듭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이토록 너그러운 자비를 경험했는데, 어찌 우리 또한 그처럼 너그럽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용서받은 방식 그대로 끊임없이 용서합니다.
"베드로가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태복음 18:22)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가 겸손과 선함에 있어 그분을 닮도록 가르치십니다. 우리 안에 날뛰는 격정의 충동을 약화시키고 꺾으시며, 주님은 믿음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 관용의 본보기를 통해 우리를 강건하게 하십니다. 우리 본성의 악덕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용서는 그분으로부터 옵니다. 사실 그분은 고백한 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들까지도 용서해주십니다.
가인을 통해 치러야 할 형벌은 일곱 배로 정해졌으나, 그 죄는 사람을 향한 것, 즉 형제 아벨을 살해한 것이었습니다(창세기 4:8-15). 그러나 라멕에게는 형벌이 일흔일곱 배로 정해졌고(창세기 4:24), 우리가 믿기로는 그 형벌이 주님의 수난에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고백을 통해 이 범죄에 대해서도 용서를 베푸십니다. 세례라는 선물을 통해 그분은 자신을 욕하고 박해하는 자들에게까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베푸는 용서 또한 횟수나 숫자에 제한이 없어야 함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몇 번이나 용서할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노여워할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에 대한 분노를 그쳐야 합니다. 용서의 빈도는 우리에게 결코 분노할 때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선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온전히 사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측량할 수 없는 용서를 베풀어 주셨으므로, 우리 역시 정해진 횟수만큼만 용서해도 된다는 핑계를 대어서는 안 됩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오, 마태복음 주해,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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