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드리실 분은 10:30부터 보시길 바랍니다.^^
도입 or 요약
모든 교회의 구성원으로 살다보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돈 문제, 권력 문제, 개똥 철학 문제, 자존심 문제 등이에요.
오늘 본문의 수신자는 빌레몬이에요. 당시,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 한명이지요.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목양하는 사람(지도자[집사, 권사, 장로 등에 해당])은 교인들을 가족으로 여기기에, 나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해요. 예컨대, 나에게 억울한 피해(돈 문제, 권력 문제, 개똥 철학 문제, 자존심 문제 등)를 입히는 교인을 마주하더라도,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야 해요.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은 특히, 교회의 지도자는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고, 교인들을 한 지체로 보며, 연합해야 하죠. 모든 사람이~ 성숙한 교회 지도자가 되길 바랍니다!(어린 신앙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
구원을 베푸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오늘도 은혜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그리스도의 가족입니다. 각자의 다양한 삶을 이해하도록 지혜를 주시고, 나에게 피해를 준 형제자매에게 용서와 자비를 베풀게 도와주세요. 그리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간대별 상세 요약 (Timeline Analysis)
설교가 진행된 핵심 타임라인별 상세 내용입니다. 가족의 마음으로 묵상해 보세요.
26:04 ~ 28:07 | 교회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의 본질
- 다양한 구성원의 모임: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리는 교회 안에는 나이, 성별, 성향, 직업이 전혀 다른 수많은 구성원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 갈등의 네 가지 원인: 서로 다른 이들이 모이다 보니 반드시 인간관계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표적으로 밥값을 내거나 돈을 빌려줄 때 생기는 돈 문제, 공동체의 결정권과 재정 집행 자리를 탐하는 권력 문제,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우기는 개똥철학의 문제,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자존심의 문제가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면 상대를 공격하고, 인사도 안 하며, 뒤에서 살살 긁는 악질적인 폭력으로 번져 교회를 어지럽히게 됩니다.
28:08 ~ 31:00 | 내 권리를 포기하고 용서를 선택하는 초대교회 리더의 자격
- 가족으로 여기는 마음: 아무리 교회가 복잡하더라도 영적 지도자는 교인들을 철저히 '가족'으로 여겨야 합니다. 가족 안에서는 내 권리가 마땅하고 억울할지라도 따지고 싸우기보다 권리를 스스로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 한 몸이 되는 연합: 돈, 권력, 자존심 때문에 억울하게 밀리고 피해를 보더라도 용서와 자비를 베푸는 것이 성숙한 지도자(집사, 권사, 장로 등)의 사명입니다. 직분이 무서워 도망치지 말고,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고 성도를 팔다리 같은 한 지체(Body)로 보아 성숙하게 연합해야 합니다.
31:01 ~ 33:23 |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의 조건 없는 자비와 실천
- 육지를 밟고 마주한 흉상: 목사님의 고향인 부산 섬마을에서 20년을 살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육지로 나왔을 때, 학교 입구에서 '이태석 신부'의 흉상을 마주했습니다.
- 안락함을 버린 청춘: 다큐멘터리 영화(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인 그는 내전, 전염병, 기아가 극심한 남아프리카 수단에서 10년간 의사이자 신부로 헌신했습니다. 30세의 젊은 나이에 의사 면허와 신부 자격을 모두 갖추어 안락한 삶과 부, 명예가 보장되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수단의 아이들에게 총 대신 연필과 악기를 쥐여주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개신교 성도들에게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짜 자비를 베풀고 있는가"라는 묵직한 도전과 질문을 던집니다.
33:24 ~ 35:24 |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 세상의 자비와 교회의 본질적 의무
- 불교와 무신론의 자비: 천만 신자를 가진 불교에서도 극락왕생을 위해 개미 한 마리 밟지 않는 자비를 말하고, 신이 없다는 무신론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자들도 다 가진 것을 나누어 유토피아를 만들자며 자비를 슬로건으로 내겁니다.
- 교회 안에서 시작되는 참된 자비: 세상도 저마다의 자비를 말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진짜 자비를 정밀하게 점검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엉뚱하고 잘못된 자비가 아닌, 신앙의 고백을 담아 '교회 내부 형제자매들 사이의 자비'부터 복음적으로 선포하고 나누어야 마땅합니다.
35:25 ~ 38:01 | 통계로 보는 한국 교회 상처의 현실과 용서의 공백
- 관계 때문에 떠나는 성도들: 한국 교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성도의 약 75%가 한 번 이상 교회를 옮긴 경험이 있으며, 그중 무려 50%가 '인간관계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용서받지 못한 400만 명의 상처: 오늘날 주일 대예배에 앉아 있는 성도 중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과거 교회에서 다투거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교회를 옮긴 이들입니다. 천만 성도 기준으로 따지면 무려 4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용서와 자비를 경험하지 못해 교회를 떠나 유랑한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지라도 서로를 철저히 가족으로 여겼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안타까운 수치입니다.
38:02 ~ 41:23 | "그는 여전히 죄인이다" 성화의 과정에 있는 성도를 대하는 여유
- 법정적 의인과 실재적 죄인: 빌레몬서는 관계가 깨졌을 때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려줍니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는 회심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나 '여전히 죄를 짓는 죄인'이었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믿어 법적으로 의인이라는 판결(땅땅땅 쳐주심)을 받았을 뿐, 몸은 여전히 죄 가운데서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에 있습니다.
- 나 자신을 향한 정밀 점검: 그러므로 교인들에게 특별하고 완벽한 성숙함을 기대하며 실망하지 말고, "나처럼 저 사람도 다듬어지는 과정이구나"라는 영적 여유를 가져야 감정 싸움으로 번지지 않습니다. 나아가 저 사람 때문에 교회를 못 다니겠다고 입을 다물고 호소하기 전에, "혹시 내가 다친 마음으로 대하진 않았나, 상대의 형편을 헤아리지 못했나"라며 나 자신을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41:24 ~ 44:13 | 목사님의 어린 시절 코피 사건과 가위 사건이 주는 '가족'의 교훈
- 육촌 동생의 고의성 짙은 발길질: 목사님이 초등학생 시절 명절 추석 때, 장난이 심했던 육촌 동생이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치다가 발로 목사님의 얼굴을 강하게 찼습니다. 코피가 터지고 눈에 시퍼런 멍이 들었지만, 남이 아닌 '피를 나눈 친척 형제'였기에 화를 참고 넘겼습니다.
- 여동생과 장난치다 베인 손가락: 유치원 시절, 어머니가 꽃꽂이 부업을 하느라 거실에 두었던 흰색 가위를 여동생이 쥐고 까불었습니다. 목사님이 장난으로 가위 날 사이에 손가락을 슉슉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결국 살점이 깊이 베여 피가 쏟아졌습니다. 모르는 남의 집 아이였다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대형 사고였으나, 이 역시 '내 동생, 내 가족'이라는 정체성이 있었기에 한낱 해프닝으로 용서하며 덮어질 수 있었습니다. 성도를 바라볼 때도 이와 같은 친형제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44:14 ~ 48:00 | 거부 빌레몬에게 임한 바울의 권면과 복음의 빚진 자의 의무
- 초대교회의 막강한 거부 리더: 빌레몬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폴리스라는 부유한 3개 도시의 가교 교회를 전방위로 이끌며 자신의 거대한 대저택을 예배 처소로 내놓은 목회자이자 장로급의 충성스러운 거부였습니다.
- 사랑의 전가 요청: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의 종 오네시모가 도망치며 입힌 막대한 재정적 손해와 잘못을 조건 없이 용서하라고 권면합니다(빌 1:19). 바울은 "과거 불신자였던 너를 내가 눈물과 인내로 전도하고 양육하여 영적 빚을 지웠으니, 이제 네가 내게 진 그 사랑의 빚을 오네시모에게 자비로 갚으라"고 선포합니다.
- 선배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 예배자: 오늘날 대예배를 드리는 우리 역시 부모나 믿음의 선배들이 시간 내고 자기 돈 들여 봉사하며, 눈물과 인내로 양육해 주었기에 이 자리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선배들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의 진짜 가족'으로 품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자비입니다.
48:01 ~ 51:43 | 결론: 오네시모에게 값없는 자비를 베풀기로 결단하는 진짜 가족
- 머리 되신 예수님과 지체의 연합: 우리는 예수님을 대가리로 모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한 가족입니다. 손발과 다리가 조금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잘라버릴 수 없듯이, 인내와 용서로 품어주어야 합니다.
- 값없는 자비의 실천: 관계의 상처로 교회를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나에게 물질적으로, 자존심으로 큰 손해와 타격을 입힌 '또 다른 오네시모'를 마주할 때, 우리를 가족 삼아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와 신앙 선배들의 헌신을 기억합시다. 일터와 교회에서 내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고 자비를 베풀어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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