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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Year with the Church Fathers: Meditations for Each Day of the Church Year by Scott Murray
성경 본문
Psalmody: Psalm 11
Additional Psalm: Psalm 118, Psalm 51
Old Testament Reading: Genesis 41:1-27
New Testament Reading: Mark 11:1-19
오늘의 기도: 구원의 하나님, 주님의 이름으로 참으로 오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께서 “호산나!” 외치는 소리 가운데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셨나이다. 이 사순절에 저희가 그분과 함께 십자가로, 그리고 그 너머 빈 무덤으로 여정을 떠나오니, 저희를 대신하신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깨달을 믿음을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나님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당신의 아들이시며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나이다. (1005)
묵상
갈보리에 심겨 있던 나무는 열매 맺는 전성기에 잘려 나가 생명의 주님께서 달려 죽으신 날것의 목재가 되었습니다. 동산에서 열매가 풍성하고 눈으로 보기에 매력적이며 맛있는 것을 맺는 듯 보였던 것(창세기 3:6)이 이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베어져 죽음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모든 풍성함의 바로 그 근원이었습니다. 우리의 첫 조상이 생명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 죽음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원수의 무기를 그에게로 돌리시는 이 신비는 얼마나 깊은지요.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잎사귀 때문에 그 나무를 저주하셨는데, 그 잎사귀는 한때 인간의 수치를 가리는 데 사용되었던 것입니다(창세기 3:7). 그 무화과 나뭇잎은 우리의 첫 조상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불신하여 그것을 저주와 짐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하나님께는 명백한 사실을 거의 가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는 몇 장의 작은 잎사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덮는 살과 피가 되기를 준비하시면서, 그것의 미약한 가리는 능력을 저주하십니다(마가복음 11:14). 그분은 우리의 죄와 수치를 위한 무화과 나뭇잎이 아니라, 우리의 사악함과 타락을 덮는 가죽옷입니다(창세기 3:21).
주님께 저주받은 것은 결코 그 저주를 덮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살은 동산에서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이제 우리는 간절한 기쁨으로 “아버지, 제가 여기 있나이다. 그리스도의 의로 덮여 있나이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들을 가렸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도 무화과나무를 당신의 마지막 표징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수난을 향해 가시려 할 때, 모든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오직 그 나무 하나만을 그 상징을 위해 저주하시며,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마가복음 11:14)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 파멸이 취소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때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무화과나무에서 음식을 흔히 찾을 수 없는 계절에 오셨습니다. 겨울철에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고 잎사귀만 무성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이것을 모르셨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아셨지만, 여전히 찾으시는 것처럼 오셨습니다. 그분은 열매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셨지만, 그 상징적인 저주가 오직 잎사귀에만 해당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의 키릴루스, 교리 강해,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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